책소개
<벚나무 동산>은 절망 가운데 미소가 있고 암흑 가운데 서광이 있으며, 인간미와 진실성이 있는 작품이다. 경제적으로 몰락한 여지주 류보비 안드레예브나는 추억이 깃든 벚나무 동산이 있는 집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녀는 벚나무 동산을 지키고 싶었으나 농노의 아들이자 신흥 자본가인 로파힌에게 넘어가고, 결국 그녀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벚나무 동산에 홀로 남아 있던 류보비 안드레예브나의 늙은 하인 피르스는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막을 내린다.
표면적으로는 <벚나무 동산>이 경제적 몰락과 가족의 이별, 죽음 등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밝기 전에 희미하게 남는 어둠’을 그리는 이 작품은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류보비 안드레예브나를 비롯한 인물들은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강한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체호프는 우리에게 인생은 괴로운 것이지만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각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체호프는 이러한 관념을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적확하게 표현했다.
200자평
체호프의 4대 희곡의 하나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 삶과 현실의 문제를 보다 예술적-미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19세기 말의 리얼리즘과 20세기 초의 모더니즘이라는 두 개의 문화 패러다임의 접점에서 생겨난 동시대의 새로운 사상적-미학적 상황도 감지할 수 있다.
지은이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 1860∼1904)의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 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해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다.
1879년 체호프는 모스크바에서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안토샤 체혼테’, ‘내 형의 아우’, ‘쓸개 빠진 남자’와 같은 필명으로 생계를 위해 유머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1885년 12월 체호프는 레이킨의 초대를 받아 페테르부르크로 가게 된다. 거기서 드미트리 바실리예비치 그리고로비치와 알렉세이 세르게예비치 수보린을 알게 된다. 1886년 초 그리고로비치는 체호프의 <사냥꾼>을 읽으면서 그의 위대한 재능이 소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 작가는 체호프에게 재능을 아낄 것과 굳건한 문학적 입장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충고 이후 1887년 봄 무렵부터 체호프는 이전과는 다른, 보다 객관적인 작가로 변모하게 된다. 한편으로 수보린은 체호프에게 고정 지면을 내주었고, 경제적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그의 경제적 후원 덕택에 체호프는 원고 마감 시간과 주제의 제약과 같은 현실적 부담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892년 모스크바 근교의 멜리호보에 정착한 작가는 왕성한 창작열로 <6호실>(1892), <문학 선생>(1889∼1894), <롯실트의 바이올린>(1894), <대학생>(1894), <3년>(1895), <다락이 있는 집>(1896), <나의 삶>(1896), <갈매기>(1896), <농군들>(1897)과 같은 후기 걸작들을 집필했다. 한편으로 농민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톨스토이, 코롤렌코와 함께 기근(饑饉)과 콜레라 퇴치 자선사업을 펼쳤으며, 학교와 병원 건립 등 사회사업에도 참여했다. 1898년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크림 반도의 얄타로 이사한 체호프는 우울과 고독 속에서 나날을 보냈는데, 모스크바 예술극장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의 결혼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용무가 있어서>(1899), <사랑스러운 여인>(189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바냐 외삼촌>(1899), <골짜기에서>(1900), <세 자매>(1901), <약혼녀>(1903) 등을 발표했다. 1904년 1월 17일 체호프의 생일에 초연된 <벚나무 동산>과 창작 25주년 축하연은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지만, 그의 건강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같은 해 6월 독일 바덴베일레르(Баденвейлер)로 아내 올가 크니페르와 요양을 떠나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강명수는 1965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했다. 1985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한 뒤 대학 생활의 절반을 <고대신문>에서 기획 면과 학술 면을 담당하며 보냈다. 동 대학원에서 체호프 후기 단편소설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아주어과(러시아어, 러시아 문화와 역사 담당)에서 강사,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그 후 러시아로 유학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안톤 체호프의 사상적인 중편소설 연구: ‘등불’에서 ‘6호실’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에서 <가르신의 ‘붉은 꽃’과 체호프의 ‘6호실’에 드러난 공간과 주인공의 세계>라는 연구로 박사 후 과정(Post-doc.)을 마쳤다. 2005년까지 고려대학교(학부)와 중앙대학교(학부와 대학원)에서 러시아 어문학과 문화, 체호프와 톨스토이를 강의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청주대학교 인문대학 어문학부 러시아어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3년부터 포항대학교 관광호텔항공과 교수로 있다.
체호프, 톨스토이, 가르신에 대한 주제로 30편의 논문을 권위 있는 전국 규모의 학술지에 게재했고,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체호프의 세계≫[개정판 ≪체호프와 그의 시대≫(소명출판, 2004)]라는 학술서를 번역했다. 체호프 선집(총 5권)을 기획하고, ≪체호프 선집 4-철없는 아내≫(범우사, 2005)를 번역했다. 체호프의 희곡 ≪벚나무 동산≫(지식을만드는지식, 2008)과 ≪갈매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1)를 번역했고, 톨스토이 말년의 걸작 ≪하지 무라트≫(지식을만드는지식, 2008)와 ≪위조 쿠폰≫(지식을만드는지식, 2009)도 번역했다. 아울러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을 맞아 펴낸 톨스토이 전집(총 12권) 중에서 후기 걸작들이 담긴 제9권 ≪중단편선IV≫(작가정신, 2011)를 번역했다. 또한 러시아어 교재 ≪쉽게 익히는 러시아어 2≫(공저, 신아사, 2007)를 출간했다.
체호프 연구 3부작 중에서 첫 번째 연구서 ≪체호프 문학의 몇 가지 쟁점: 우리 시대의 인간·현실·관념 읽기≫(보고사, 2009)를 출간했다. 두 번째 연구서 ≪체호프 다시, 깊이 읽기(A thorough re-reading of Chekhov’s works): 의복, 음식, 젠더, 공간, 시대≫(한국학술정보, 발간 예정)도 집필하고 있다. 체호프 연구 3부작의 마지막 연구서인 ≪체호프의 프리즘으로 러시아 문학 뒤집어 보기≫도 집필을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3
제1막······················5
제2막······················47
제3막······················81
제4막·····················113
해설······················141
지은이에 대해··················146
지은이 연보···················149
옮긴이에 대해··················154
책속으로
피르스 : (문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만져본다.) 잠겼군. 모두들 떠났어…. (소파에 앉는다.) 나에 대해선 잊어버렸어…. 괜찮아…. 나는 여기 좀 앉아야겠어…. 그런데 레오니트 안드레이치는 아마 털외투를 입지 않고 그저 외투만 입고 떠났을 거야…. (걱정스러운 듯이 한숨을 쉰다.) 내가 보살펴주질 않았으니…. 젊은 사람들이란 어쩔 수 없다니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린다.) 인생이 다 지나가 버렸어, 많이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눕는다.) 난 좀 누워 있어야지…. 넌 기운이 하나도 없구나,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것도…. 에이, 모자란 놈 같으니!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